아시다시피 올 해는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제병합 된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부끄러운 역사, 아픈 역사에 100년이라는 수식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아직도 일제 식민지 지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많은 피해자와 희생자 유족들에게는 100년이라는 시간이 새삼 좌절과 한으로 남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한일 두 나라의 지식인들이 강제병합은 불법이며 원천무효라는 목소리를 함께 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식민지 지배의 당사자인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다운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고 피해자들과 희생자 유족들이 합당한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 지긋지긋합니다. 일본정부가 원망스럽습니다. 민주당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가 일본 국내 여론의 역풍을 맞는 걸 보면 일본 국민들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 정신대 할머니들과 원폭 피해자들,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요구가 과연 관철될 수 있을지 비관적인 전망이 앞섭니다. 팔순을 넘긴 피해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뜨고 있습니다. 답답한 현실이지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시간에 맡기고 손을 놓을 수도 없습니다. 피해 당사자들은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라도 해야 그나마 가슴 속 울분을 조금이라도 뱉어낼 수 있을 것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른바 국격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라도 꼭 매듭을 지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일협정에 서명하는 박정희 대통령



이런 답답한 마음에 자꾸 우리 안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일본 국민의 여론과 일본정부의 태도 변화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기에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에서 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분단과 전쟁, 경제발전과 민주화로 격동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일제하 강제동원 실태조사,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친일파 재산환수 등 과거사 청산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한을 보듬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일에는 정부가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한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65년 한일협정으로 일본정부가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주장을 하게 만든 것이 대표적인 사례죠.
그래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습니다. 한일협정으로 우리 정부가 받은 청구권 자금 5억 달러 중 약 2억 달러 정도가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에 투자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포스코 측에 도의적 책임을 주문했습니다. 그 뒤 포스코는 지난 4월,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면 상당한 액수의 기금을 출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사실 책임을 따지자면 포스코보다 정부가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그런데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포스코의 뜻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여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혀 기금 출연이 무산됐다’ 고 보도했습니다. 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미지급 임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일본기업들이나 이를 방조하고 있는 일본정부와 뭐가 다른지 가슴이 답답합니다.

이제 2010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피해자들을 돕고 후손들에게 살아 있는 역사를 교육할 재단 하나 설립하지 못한다면 강제병합 100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연합뉴스가 보도한 1965년 일본 외무성의 내부 문서




이 문제는 국민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지만 특히 대한민국의 보수세력이 앞장 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역사적 책임도 책임이려니와 현실적인 능력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얼마 전 한나라당 의원을 지냈고 여의도 연구소장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원폭 피해자들을 보살피기 위한 합천 ‘평화의 집’ 원장을 맡았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보수세력의 도덕성과 책임을 강조해왔던 정치인다운 결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에 박근혜 의원님께서 힘을 보태신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2010년이 넉 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orangutan 님은 CBS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시사자키>의 연출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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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angu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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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obile prices in pakistan 2011.09.08 0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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