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이러니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무사하게 돌아오기만을 바랍니다." "피폭은 각오하고 있다. 계속 못 들어간다. 어쨌든 열심히 잘 살기 바란다."

일본에 있는 한 지인이 전해 준 어떤 부부의 대화 내용이다. 남편은 후쿠시마 원전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남은 50명 중 하나다. TV에 소개된 부인의 인터뷰와 남편으로부터 온 메일 내용을 페이스북에 소개한 그 지인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부인은 울지 않습니다. 각오를 한 사람은 용감해집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희망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6개의 원자로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폭발과 그로 인한 상황악화는 그야말로 이제 ‘간절한 바람’ 외에 별 대책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사태진화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고 현장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는 사람들이 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방사능 유출은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방사능 유출로 인한 피해는 어떻게 될까?

광범위하고 오래 지속될 방사능유출 피해

우리나라에는 풍향으로 인한 큰 위험이 없을 거라고 하지만 유출된 방사성 물질은 바람을 타고 곳곳으로 퍼질 것이다. 또 일부는 대기 중에 머물다 비와 함께 어디론가 떨어질 것이다. 당장은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피해자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 해도 어딘가에서 그 후과는 나타날 것이고 상당 기간 동안 일본과 주변국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농산물이며 수산물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핵폭탄처럼 단시간 내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진 않지만 원자력발전소의 사고로 인한 여파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원자력에너지를 인류는 언제까지 안고 갈 수 있을까? 현재 지구상에는 약 440기 정도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고 인류가 사용하는 전력의 12퍼센트를 원자력발전이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원자력발전이 아직 소수 국가들에 한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력생산의 약 36퍼센트를, 프랑스의 경우에는 약 80퍼센트를 원자력발전이 담당하고 있다.
1950년대에 원자력발전소가 처음 가동된 이후 불과 반세기만에 원자력에너지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너무 깊이 파고들었다. 게다가 석유를 포함한 화석연료의 고갈이 예고되고 기후온난화가 시급한 과제로 등장하면서 이제 원자력발전은 쉽게 버리기도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그리고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까지. 전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사고들이 있었지만 천재지변만 아니라면 발전된 기술로 위험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원자력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한동안 논란은 뜨겁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천재지변이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인가.

원전르네상스? 사고의 위험, 통제는 가능한가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도 확인됐지만 원자력발전소에 보관중인 사용 후 핵연료도 유사시 엄청난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류는 사용 후 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사용후 핵연료는 대부분 원자력발전소의 임시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들은 매년 막대한 양의 사용 후 핵연료를 배출하고 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지난 2000년 현재 전세계 사용 후 핵연료의 양은 22만톤에 이르고 매년 1만 톤씩 증가하고 있다. 만약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원전 르네상스가 일어 전세계적으로 원전건설이 확대된다면 사용 후 핵연료는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다.

대책 없이 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원자력만은 아닐 것이다. 석유 또한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인류를 덮칠지 모르는 기후변화를 유발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기후변화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인류가 당면한 부정할 수 없는 과제라면 방사능 폐기물에 대한 대책 없이 원자력발전을 늘려나는 건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우리의 후손들을 생각하면 윤리적으로도 용인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원자력발전으로 과잉생산된 전력을 심야전기라는 이름으로 값싸게 공급했었다. 심야전기가 공급된 이후 심야전기로 난방을 하는 90만 가구가 전체 1200만 가구 가정용 전기소비량의 3분의 1을 사용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그 결과 지난 2008년 현재 심야전기의 60퍼센트를 천연가스 발전이, 30퍼센트를 중유발전이 담당하게 되었다. 공급확대가 과소비를 낳고 과소비가 다시 공급확대를 낳는 악순환이다.

지구와 후손들을 위한 우리의 선택은?

사고 확률이 낮다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물론 후손들에게까지 위험을 안고 살수밖에 없는 원자력에너지를 이대로 안고 갈 것인가. 당장 원자력에너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현재 상태보다 더 확대하는 것만큼은 중단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야 위험을 안고 원자력발전을 이용하더라도 핵폐기물에 대한 안전한 처리방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후손들에게 골칫덩이를 떠넘기는 일만큼은 중단해야 하지 않겠는가. 독일은 지난 2000년 사민당과 녹색당 연립정부가 원자력 포기를 선언한 뒤 2008년 현재 전체 에너지원의 7퍼센트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성과를 거뒀다. 덴마크의 경우 전력생산의 약 20퍼센트를 풍력발전이 담당하고 있다. 원자력발전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든 지구와 우리 후손들에게 최소한 이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사태수습에 나선 ‘최후의 50인’이 무사히 귀환해 가족들과 재회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Posted by orangu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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