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1년 6월 8일 (수)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소설가 서해성

전두환 정권의 퇴진 요구, 학생들이 앞장서 반대했다
중국연구의 길을 열었던 학자
따뜻하고 포용력있는 진정한 보수주의자
<한국공산주의운동사>집필도 큰 성과    

<이 사진 한 장>-김준엽 선생님 가시는 길에


사진 한 장이 있어/광복군을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나도 저 경기관총을 메고 대륙을 내달리고 싶다./ 챙 얕은 모자 그늘지게 검게 탄 얼굴/광복은 거기 이미 있었다./ 탄환이 인간의 심장에서 발사된다는 걸/이 사진 한 장으로 단박 알아버렸다./ 절로 무릎 꿇고 새겨보던 사진 한 장/ 산동성 유현 양식 사진관/오른쪽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숨어서/ 지금도 뒷모습 보고 싶은,/ 김준엽, 그가 떠났다./ 90년을 날아오던 탄환이 초여름 땅에/ 내려섰다./ 파촉령 넘어 그가 달려간 6천 리 길은/ 아직 짧구나./장정은 끝나지 않았다!/그는 더 두고 살았어야 했다. 장준하네 몫까지/ 밀린 광복, 밀린 통일의 역정./장정은/ 미처 끝나지 않았다./마지막 광복군 김준엽,/마지막 광복군은 늘 새로운 광복군이었다./ 아침마다 광복이었다.

하루도 옛날로 살지 않았다./독재에서, 탐욕에서, 가르침에서/한 순간도 광복 아닌 적이 없었다.

쉬저우에서 충칭에서 강의실에서/부끄럼 아는 모든 이의/ 인간 교과서였다./ 회초리 모르는/아버지였다./ 날마다/ 새로 찍은 사진이었다.

▶정관용> 시사자키 3부 시작합니다. 영원한 광복군, 시대의 스승으로 불리워왔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어제 향년 92세로 생을 마감하셨습니죠. 어떤 생을 살다 가셨는지, 소설가 서해성 씨에게 들어보죠. 여보세요?

▷서해성> 예, 안녕하세요?

▶정관용> 우선 고인의 일대기를 간략히 좀 요약해주시겠어요?

▷서해성> 예, 김준엽 선생님은 사실 좀 알려지신 분이지 않습니까? 평안북도 강계 출신이시지요. 강계라고 그러면 사람들이 잘 모를 수 있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한의 정부가 후퇴해서 사령부를 꾸렸던 곳이 바로 강계이지요. 그러니까 아주 오지라는 뜻입니다. 그랬다가 신의주로 나오셔서 신의주에서 초등학교, 보통학교를 다니셨습니다. 그랬다가 게이오기주쿠(慶應義熟), 게이오대학이라고 나중에 바뀌었습니다만.

▶정관용> 일본에 유학을 하셨지요?

▷서해성> 그렇습니다.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사람이 세운 대학이지요.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데 기여했던 그런 사람들을 기르던 대학이었는데, 이분이 그래서 가신 건 아니고요. 게이오대학에서 동양사학을 공부하던 중에 자진입대하셨습니다. 학도병으로요.

▶정관용> 자진입대요?

▷서해성> 예, 자진입대하셨습니다. 광복군으로 탈출할 걸 계획을 세우고 입대하셨던 거지요. 그래서 애초부터 그런 계획을 세우시고 하셨던 거지요. 그러니까 좀 다른 경우지요. 그리고 이제 입대하자마자 바로 이제 서주, 그러니까 시저우에서 부대를 탈출해서 중국 유격대를 거쳐서 거기서 다시 장준하 선생 등을 만나서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까지 가셨습니다. 그게 이제 그 유명한 대장정, 6천리의 길을 걸어서 가셨던 길인데요.

▶정관용> 그렇지요.

▷서해성> 그리고 나서 중국에서 선생님을 잠깐 하시다가, 대학에서. 그리고 이제 한국에 오셔서 고려대학교에서 30여 년 동안 계시다가 이제 전두환 정권 초기 때 총장을 3년 하셨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총리제안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관용> 82년부터였죠?

▷서해성> 그렇지요. 그때 아주 유명하신 총장이셨지요. 더구나 그때 더 유명했던 이유가 두 가지인데, 앞 전 총장께서 총리를 하셨거든요. 그 정권의. 그러니까 전두환 정권의 앞 전 총장께서 총리를 하셨는데, 그 다음 분은 그런 제안을 받으셨어도 가지 않으셨고 그리고 그 다음 분이 바로 이 김준엽 선생님이시지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정말 감싸안아주시고, 그런 과정에서 이제 총장에서 강제로 쫓겨나셨는데, 이 분이 늘 말씀하셨던 것이, 이분이 정부에서 몇 개 훈장도 받고, 중국 정부하고 일하면서 훈장도 받고 이러셨는데, 내 인생의 가장 큰 훈장을 하나 받았다. 그건 뭐냐면 학생들이 총장 퇴임을 반대하는 시위를 했거든요. 사실 살면서, 제자를 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할까, 큰 기쁨이라고 할까요. 보통 사람은 받을 수 없는 그런 사랑도 받으셨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전두환 정권의 총장 퇴진 요구, 학생들이 앞장서 반대했다

▶정관용> 82년, 83년 초반이면 정말 서슬퍼렇던 시절인데, 그 당시에 학생들로부터 총장 퇴임 반대 시위까지 이끌어내셨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거지요.

▷서해성> 예, 삶을 그렇게 사셨지요.

▶정관용> 그리고 나서 아까도 잠깐 소개했습니다만, 굉장히 여러 차례 관직 제의를 받았는데 다 고사하셨지요?

▷서해성> 예, 기록에는. 저는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는데, 오늘 자료를 보니까 12번 제안을 받으셨다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정관용> 와, 12번이나? 어떤 직책들을 제안받으셨나요?

▷서해성> 대개 국무총리 같은 그런 직책을 제안을 받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흔쾌히 거절하셨던 거지요.

▶정관용> 단호히 거절하셨다?

▷서해성> 예,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공부하는 사람이 그런 거 거절하는 게 저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데요,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당연한 것이...

▶정관용> 글쎄 말이에요.

▷서해성> 지조가 되고 절개가 되는 그런 아주 묘한 세상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정관용> 그러면 고려대학교 총장에서 강제 퇴출되신 후에는 공직은 안 맡으셨나요?

▷서해성> 예, 공직은 안 맡으셨고 이제 계속해서 공부를, 원래 공부를 하셨던 분이니까, 중국과 관련된 공부를 연구소에서 계속 공부를 하셨고요. 사회과학원이라고 하는 재단법인인데요, 돌아가실 때까지 그 일을 하셨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퇴임하신 이후에 시니어로 하실 수 있는 중요한 일, 당신의 전공이시기도 한데 중국과 관련된 연구를 계속 하셨고 중국에 있는 여러 대학에 한국학연구소를 설립하셨습니다. 베이징대라든지 여러 군데에 설립하셔서 그 지역에서 중국에서 한국을 공부할 때,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그런 길을 열어주셨던 큰 스승이십니다.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중국공산당사>집필도 큰 성과

▶정관용> 학자로서의 연구 성과도 대단히 크지요?

▷서해성> 아, 그럼요. 학자로서 크게 두 가지 연구를 하셨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는데요, 첫 번째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집필하신 일이지요. 공주에 계시지요, 김창순 선생하고 같이 쓰셨는데, 이제 분단이 되고 나서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언급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금기였지 않습니까?

▶정관용> 그래요.

▷서해성> 사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이게 마치 대단한 일처럼 보이지가 않는 거지요. 그러나 굉장한 일인 거거든요. 그러니까 구한말에서부터 해방이 된 이후, 그리고 조선공산당 재건 당시까지를 다룬 아주 두꺼운 책이지요. 그 책을 연구하셨습니다. 그게 이제 지금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연구가 되었습니다만은, 고려대학교 부설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그 책을 발행했거든요.

▶정관용> 그렇지요.

▷서해성> 그 아세아문제연구소를 출입하느냐, 출입하지 않느냐가 바로 역사에 관심이 있느냐, 관심이 없느냐를 가를 만큼 70년대, 80년대에는 그러했는데, 바로 그곳의 소장을 역임하셨지요. 그러면서 그 책을 집필하셨습니다.

흔히 잃어버린 역사 반쪽 하나를 당신 손으로 회복하신 일이고, 그리고 이제 저희가 사실 분단정권이다 보니까 그런 부분이 금기였는데, 그런 쪽을 살려낸 부분, 그리고 기껏해야 미국이나 일본에서 미군 자료나 혹은 이런 것들에 기초해서 연구했던 것들을 한국인의 손으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한 업적을 남기셨다는 한 부분하고. 또 하나는 이제 중국과 관련된 것이지요.

▶정관용> 그렇지요.

▷서해성> 중국 공산당사를 한국인의 손으로 쓴 텍스트를 쓰신 거지요. 그리고 사실 그게 지금 이야기들어보면 그냥 할 만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 전에는... 단적인 다른 일을 하나만 말씀드리면, 한국에서 고구려사를 연구한 박사가 열 몇 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고구려사의 중요한 자료들이 북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게, 고구려사를 연구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금기처럼 되어 있는데, 그런데 중국 공산당사를 연구했다, 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결국은 우리가 한중수교가 곧 되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서요. 지금 우리가 경제 교역이 가장 큰 것이 중국인데, 그것을 당신이 앞길을 트셨다. 그게 이제 당신의 경험과 연구와 가치가 맞아떨어진 그런 부분이고. 학자로서 아주 실천적 삶을 사셨던 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분이 사회주의자냐? 그렇지 않으시거든요. 그렇지 않으시고 포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실 민족주의자라고 말씀드릴 수 있고, 한 개인의 삶으로 사실 보자면 아주 따뜻하고 그리고 포용력 있는 진정한 보수, 참다운 보수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 같으면.

이게 보수이거든요, 사실은. 사람들은 보수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말하는 그건 진정한 의미의 보수라고 하기 어렵고요.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보수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분의 삶을 사실 한마디로 요약해서 방송 들으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책에서 배우지 않는 걸 가르쳐주신 분이거든요.

▶정관용> 뭘 가르쳐주셨나요?

▷서해성> 책에서 배우지 않는 것, 우리 역사책이나 그런 책에서 배우지 않은 걸 가르쳐주신 분이지요.

▶정관용> 그러니까요. 무얼 가르쳐주셨어요?

▷서해성> 당신의 삶이지요.

▶정관용> 삶을?

▷서해성> 삶을 교과서처럼 쓰신 분이지요. 그러니까 한걸음 한걸음을 붓으로 글씨를 쓰듯이 사셨던 그런 분이시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관용> 한걸음 한걸음 글씨를 쓰듯이?

▷서해성> 예.

▶정관용> 젊은 시절 광복군으로 가기 위해서 일부러 중국에 가셨다, 자진입대해서. 거기서부터 어떤 기개가 보여지고요. 6천리 대장정에서 벌써 우리들에게 뭔가 귀감이 되어주시고, 그리고 학자로서 외길을 올곧게 걸어오신 것. 바로 이런 것들이겠군요.

▷서해성> 그렇습니다. 그분이 하셨던 말씀 중에 제가 꼭 청취자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6천리 장정을 가실 때에, 그게 이제 당신이 쓰신 책에 나오는 말 중에 나옵니다. 우리가 말이 그렇지, 6천리를 걸어간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 않습니까? 더구나 그냥 걸어간 게 아니고 적지를 뚫고 가야 하는 그런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그런 어려운 일인데, 그때 이제 장준하 선생님, 윤경빈 선생님 이런 분들하고 같이 가셨는데, 그때 이런 결심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합니다. 내가 왜 이 길을 걸어가야 하나, 사실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내가 다시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겠다. 내가 우리 조상들이 못나서 이 어려운 길을 내가 가고 있으니... 과연 그 약속하셨던 대로 사셨던 훌륭한 분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모든 문제를 정면돌파 했던 분

▶정관용> 알겠습니다. 향년 92세로 생을 마감하셨는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우리의 또 이런 위대한 스승분들을 앞으로도 많이 모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서해성> 한 말씀만 더 드리고 싶습니다. 늘 이제 이분을 이야기할 때, 오늘 많은 추도사들이 마지막 광복군이라고 그렇게 나왔습니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분은 마지막 광복군으로서 종을 치신 분이 아니고, 자기가 새로운 일을 당할 때마다 늘 새로운 광복군이었다고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광복군의 정신, 그러니까 모든 문제에 있어서 늘 정면에 맞섰고, 그걸 돌파해왔던 분이셨다.

문제는 그분을 칭송하는 것이 자칫하면 우리의 비겁을 정당화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겁하니까 그 분이 훌륭하다. 우리의 비겁을 외면하기 위해서 그래서는 안 되고 바로 그분이 싸워오셨던 것처럼 이제 남은 우리가 광복군이 되는 일이야말로 그분의 삶을 제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관용> 따라 배워 그렇게 살아야지요.

▷서해성> 그렇습니다.

▶정관용> 잘 들었습니다.

▷서해성> 고맙습니다.

▶정관용> 소설가 서해성 씨였습니다.


Posted by orangu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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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름다움 2012.10.05 1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 김준엽 전 총장님이야말로 이시대의 진정한 참 보수인사시네요? 역대정권이 그를 공직에 오르게 유혹을 해도 단호히 거절하시고 오로지 학문에만 열중했던분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