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TV를 틀었다가 MBC 창사 50주년 특집 환경 다큐멘터리 <공존의 사회>를 보게 되었다. 볼만한 TV 다큐멘터리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시절이라 ‘환경 다큐멘터리’라는 말에 반가움이 앞섰다. 한데 웬걸, 조금 보다 보니 ‘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대규모 개발 사업을 둘러싼 환경갈등을 개발 주체와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들의 대결 양상으로 그리는 게 아닌가. 하지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는 사사건건 개발에 반대하는 환경론자들이 다소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테고 실제로 근본주의적인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인내심을 갖고 계속 지켜봤다. 그런데 다큐멘터리가 환경갈등의 한 사례 캘리포니아 주의 ‘델타빙어’ 보호 논란을 조명하면서부터 내 인내심은 바닥을 치고 말았다.

<출처:연합뉴스>

다큐멘터리는 캘리포니아주 샌 호아킨 밸리 서쪽의 농업지대가 가뭄에 타들어가고 있는 모습과 가뭄으로 인한 농업 피해, 실업문제를 하소연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화면에 등장한 농민들은 연방정부가 ‘델타빙어’라는 조그만 물고기를 보호하기 위해 농업용수 공급을 줄였다며, ‘인간’이 그깟 ‘빙어’보다 못하냐고 항의한다. 샌호아킨 밸리 서쪽 농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새크라멘토 강에서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 농지로 보내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델타빙어’가 무더기로 죽기 때문에 물 공급을 줄였다는 내용이었다. 바싹 마른 땅만큼이나 태양에 그을린 농민들의 절박한 표정과 ‘델타빙어’를 본 사람들이라면 환경론자들, 그리고 그들의 압력에 휘둘려 농업용수 공급을 줄인 미국 정부를 향해 ‘저런 미친 놈들이 있나’ 하는 생각을 품었을 것 같다. 나래이션에 간간히 등장한 환경 극단주의자의 사례로 이보다 더 적절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캘리포니아 주가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환경의식이 높다고는 하지만 멸종위기종 하나를 보호하자고 광대한 농업지대를 희생시킬까. 미 연방정부와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극단적인 환경론자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걸까.


웹에서 ‘Delta Smelt’를 검색해 관련된 몇 개의 기사를 확인하고 나니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여러 가지 자료들 중에 눈길을 끈 것은 이 사건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시각을 보여준 '월스트리트 저널'과 'LA타임스'의 칼럼이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2009년 9월 2일자에 실린 칼럼은 완고한 멸종위기종 보호법이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농업피해와 실업률 증가 등 경제적 피해를 적시하고 있다. 칼럼에는 ‘인간이 만든 가뭄’이라는 제목 아래 ‘샌호아킨 밸리 농민들에 대한 녹색전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에 비해 ‘LA타임스’ 2007년 10월 21일자 칼럼에는 샌호아킨 밸리 서쪽이 농업에 부적합한 지역이며, 새크라맨토 강에서 캘리포니아 주의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싼 가격에 용수를 공급받아 세배 이상 많은 양을 소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세금으로 싸게 그것도 인위적으로 공급되는 농업용수가 없으면 농사짓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얘기다. 개중에는 싼 값으로 공급받은 물을 다시 파는 사람들도 있으며, 막대한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댐을 건설하고 수로를 만들면서 샌호아킨 강과 새크라멘토 강, 그리고 두 강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삼각주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TV 화면에 비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사안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알다시피 강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는 생태계의 보고다. 어패류가 풍부해서 철새들의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연안 생태계를 풍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만에 형성된 삼각주에서 최근 몇십년 동안 벌어진 일은 간단한 통계로도 아주 심각해 보였다. 우선 하천의 오염과 남획, 농업용수 공급으로 인한 수량부족으로 인해 29종의 어류 중에 12종이 이미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농어, 무지개송어, 철갑상어 등이 포함된다. 생존의 위협을 받는 건 물고기만이 아니다. 치누크 원주민도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즐기는 연어도 급속도로 감소해 2003년에서 2009년 사이에 개체수가 60만에서 10만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끝으로 샌호아킨 밸리 서쪽 농민들의 원수가 된  ‘델타빙어’는 2006년과 2007년 사이에 90퍼센트가 감소했다고 한다. 삼각주 생태계의 파괴로 인해 연안에 출몰하던 범고래도 자취를 감췄다고 하니 ‘델타빙어’ 보호로 촉발된 환경갈등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복잡한 것인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하천과 습지 생태계는 여러 가지 환경규제로 인해 당장 달러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돈 많은 기업이 생기기도 어렵고 재력을 바탕으로 로비를 할 사람도 당연히 없다. 하지만 건강한 하천과 습지는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휴식과 학습의 제공할 수 있고 연안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들어 어민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다. 개개인들이야 푼돈 밖에 못 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기후변화가 눈앞의 위협으로 다가온 현실에서라면 자연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을 누구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눈에는 한 없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델타빙어’의 배후에는 이처럼 거대한 하천·습지·연안 생태계가 버티고 있었다. 지표생물인 ‘델타빙어’를 멸종위기에서 보호하겠다는 것은 새크라멘토 강과 샌호아킨 강, 그리고 두 강이 만나서 이룬 삼각지와 연안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는 것이다. ‘델타빙어’ 보호 논란에 깔려 있는 이런 배경을 생각한다면 미 연방정부의 환경규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거대한 이슈를 희귀종인 ‘델타빙어’ 보호 논란으로 협소화 시키면 ‘델타빙어’ 보호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환경론자, 환경 근본주의자로 비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동강 할미꽃, 단양 쑥부쟁이, 도요물떼새에 반하고 미쳐서 영월댐, 4대강 사업, 새만금 사업에 반대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유야 어찌됐든 당장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는 사람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당연히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식량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기업농들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비효율적인 농업을 지탱해야 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그것이 생태계의 보고를 파괴하고 국민세금을 낭비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샌호아킨 밸리의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세상 어느 나라 정부가 하나의 생물종을 살리겠다고 정치적 반대와 손실을 무릅쓰고 환경규제를 실행하겠는가. 환경갈등의 배경에 대한 심층적이고 균형 잡힌 이해 없이 합리적인 해법이 나올 수는 없다. ‘환경특집 다큐멘터리’ <공존의 시대>, 정말 유감이다. 


 

Posted by orangu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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