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1년 9월 27일 (화) 오후 7시 30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하종강 전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집중인터뷰]
 
▶정관용> 시사자키 3부 시작합니다. 오늘 3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동운동가 가운데 한 분을 모셨습니다. 30년 넘게 노동운동에 종사하셨어요. 직접 노조위원장 이런 걸 하신 게 아니고 주변에서 노동운동을 정말로 열심히 성심성의껏 도와오신 분입니다. 23년 동안 한울노동문제연구소에서 노동 상담가로 일하셨던 분이지요. 늘 강연과 상담으로 빠듯한 일정을 살아가시는 분인데 이번에 성공회대학교 노동대학장이라고 하는 새로운 직함을 또 맡게 되셨다고 합니다. 자,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어떤 포부를 가지고 있는지,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하종강> 예, 안녕하세요?

▶정관용> 이거 축하해야 돼요? 아니 워낙 바쁘신 분이라.

▷하종강> 일단 축하받을 일이지요.

▶정관용> 그런가요? 그동안에도 보면 한 달에 거의 절반은 집 나가서 지방에 다니시면서 살잖아요.

▷하종강> 그렇게들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절반보다는 적은 편이고요, 집에도 많이 있습니다.

▶정관용> 아니, 지방 곳곳 어디든 노동조합 등등에서 강연 요청 같은 게 계속 있고 그래서 계속 다니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종강> 예, 계속 다니고 그게 또 제가 보람을 느끼는 일이어서요, 이제 좀 좋게 표현하면 힘든 줄 모르고 다니지요. 

▶정관용> 그렇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 대학, 학교의 학장을 맡으시게 되면 이렇게 못 다니시는 것 아니에요, 이제?

▷하종강> 아, 그래서 다닐 수 있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맡았습니다.

▶정관용> 그런 정도 일만 하겠다?

▷하종강> 대학에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출근하면 안 되냐, 그랬더니 이틀은 나와야 된다고 그래서 월요일, 수요일을 출근하는 것으로 정했는데 그 일정이 한 두세 달 정도는 이미 잡혀있는 일정이 많이 있어서.

▶정관용> 그렇지요. 

▷하종강> 그래서 좀 불규칙하게 출근하고 있습니다.

▶정관용> 월, 수도 이제 못 지키시는 거군요, 당분간 동안은?

▷하종강> 예, 그래서 대학에서도 이런 전례가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정관용> 아무튼 그럼 그 사정을 이제 알았으니까 정식으로 축하드립니다.

▷하종강> 예, 고맙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어떤 곳이에요, 성공회대 노동대학?

▷하종강> 성공회대학 안에 민주사회교육원이라는 사회교육기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이제 한 교육과정인데, 그 내용이 주로 노동문제를 다루고 노동운동하는 분들이 많이 신청하기 때문에 노동대학이라는 명칭을 붙인 건데요, 한 12년 됐고요, 그래서 이번 학기가 24기 신입생들이 입학을 했습니다.

▶정관용> 그러니까 흔히들 성공회대학의 무슨 과, 학부과정 이런 게 아니고 일반대학에도 왜 사회교육원 이런 게 많이 있지요. 그런 코스 가운데 하나로군요? 

▷하종강>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벌써 12년 전에 만들어졌고요? 학생들은 그럼 주로 노동현장에 계신 분들?

▷하종강> 그런 분들이 대다수고요, 그런데 이번에 가서 보니까 의외로 굉장히 다양하더라고요. 그래서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고, 최근에는 이제 또 촛불집회라든가 희망버스라든가 이런 데에 참여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 성공회대학교 교수들이 가지고 있는 또 명망이 있으니까 그것 보고 많이 참석한 것 같습니다.

▶정관용> 그렇지요. 1년 코스입니까, 2년 코스입니까?

▷하종강> 2년 코스였다가 최근에 2년이 너무 좀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1년 코스로 줄였습니다. 

▶정관용> 야간에 강의하게 되겠지요, 아무래도?

▷하종강> 예.

▶정관용> 그러면 일주일에 몇 번 가서?

▷하종강> 월요일 저녁에 주로 강의를 합니다.

▶정관용> 매주 월요일 강의를 해서 1년 동안 강의를 듣는다?

▷하종강> 예, 대학 과정도 있고 대학원 과정도 있는데, 원래 다른 요일에 강의 배정을 했었는데, 대학원생들이 대부분 노동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니까 강의 끝난 뒤에.

▶정관용> 같이 만나자?

▷하종강> 예, 대학 학부생들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같은 날로 일치시켰습니다.

▶정관용> 그리고 강의를 하시는 분들은 성공회대 교수들이십니까, 아니면? 

▷하종강> 거의 대부분 그런 분들이고, 외부에 있는 실력 있는 분들도 와서 강의를 하고요. 저도 노동대학장 가기 전에도 노동대학에 가서 강의 몇 차례 했습니다.

▶정관용> 그렇지요. 주된 교육내용은 어떤 겁니까?

▷하종강> 노동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노동문제만 봐서는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뭐 역사와 철학과 경제와 또 요즘은 인문학 열풍이 불어서 그런 인문학 분야에 관한 내용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정관용>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한 일반 교양강좌? 

▷하종강> 예, 그러니까.

▶정관용> 노동운동가 양성코스 아닌가요, 혹시?

▷하종강>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그걸 좀 더 심화시키기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은 우리가 또 구상하고 있는 게 있고요.

▶정관용> 어떻게요?

▷하종강> 노동, 대학은 일단 교육 인프라라고 이야기하던데, 그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까. 뭐 기숙사 시설도 있고 강의실도 있고. 그런 시설을 활용해서 노동운동을 보다 밀도 있게 할 수 있는 활동가들을 양성할 수 있는 이런 집중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보자, 이런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정관용> 그러니까 노동대학 졸업 1년 동안 하고, 대학원 코스 또 한 1년 동안 하고. 거기에서 또 눈에 띄는 분들은 별도 집중 트레이닝 코스하고 이렇게?

▷하종강> 예, 그렇지요. 그런데 또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훌륭한 활동가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좀 문을 넓게 열려고 합니다.

▶정관용> 그런데 제가 이 자료를 보니까 12년 된 성공회대 노동대학, 하종강 학장님께서 1기 졸업생이라고요?

▷하종강> 아, 그건 좀 잘못 알려졌는데요.

▶정관용> 아니에요?

▷하종강> 제가 1기, 2기, 3기를 입학했다가 이제 수료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3번 등록했었다, 이건 알려져 있으니까 3번 만에 졸업했나보다, 이렇게 오해를 하시는데 결국 세 번 다 제가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해서, 그래서 쉽게 말하면 낙제했지요. 그래서 제가 이번 입학식 때에도 세 번 낙제한 사람이 나중에 학장이 됐으니 노동대학 참 미래가 암담하다, 이런 말 들리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12년 전에 하종강, 그 당시에는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이었을 텐데 가서 교수를 하셔야 될 분이 왜 학생으로 등록을 하셨어요?

▷하종강> 그때 신영복 선생님이 이제 초대학장이었고, 두 번째 김동춘 교수가 학장이었는데, 제가 1기 신청을 하니까 입학식 날 절 보시더니 뭐 하러 오셨냐고.

▶정관용> 글쎄요.

▷하종강> 노동대학이 잘하나, 못하나 감시하러 오셨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이번에 입학식에 보니까 이번에도 그런 분들이 이제 오셨더라고요. 그래서 공무원노조 위원장님도 이번에 입학 신청하셨고요. 쌍용차 중심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들도 있고요, 30년 전에 저를 처음 노동문제에 관심갖게 했던 동일방직 출신 노동자도 이번에 신청을 했고요, 그래서 제가 이 노동대학 하종강이 잘하나, 못하나 감시하러 오신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제가 12년 만에 했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12년 전에 1기 학생으로 등록하실 때는 왜 하셨어요?

▷하종강> 아, 그때는 이제 제가 하는 활동이 너무 소모적이라는 느낌이 좀 있었고요. 그때도 마찬가지로 상담교육이 업무량이 굉장히 많아서 새로운 것들을 습득하지 못한 채 너무 소모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반성이 좀 있었는데.

▶정관용> 아, 공부 좀 해야 되겠다?

▷하종강> 예, 그랬더니 또 이제 똑똑한 후배들 중에서는 지금 당신이 공부할 때가 아니요. 현장이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지금 이제 한가하게 공부나 하겠다고 거길 갔냐, 이렇게 말하는 후배도 있었지만, 그 활동을 더욱 잘하기 위해서 간 거니까, 그때 제가 현장에서 내딛는 발걸음의 힘을 더하기 위해서 간 거니까, 지켜봐라, 뭐 그렇게 말했습니다.

▶정관용> 그러니까 공부 좀 해봐야지, 이런 마음으로 아, 마침 성공회대학에 좋은 과정이 생기니까 등록은 했는데 결국은 수료를 못하시고? 

▷하종강> 예, 최소한 이제 70% 출석을 해야 되거든요. 결석일수가 30%를 넘으면 안 되는데, 저는 그걸 채울 수가 없더라고요.

▶정관용> 1기, 2기, 3기를 세 번 계속 등록하셔서 그래서 들을 만큼 강의는 들으셨어요?

▷하종강> 예.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런데 또 학장 맡아달라고 학교 측에서 여러 차례 요청을 했는데 계속 싫다고 그러셨다고요?

▷하종강> 그걸 이제 여러 차례다, 이렇게 말하면 또 제가 마치 삼고초려 받은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는데, 여러 분이 이야기하셨어요. 이제 오래 전부터. 제가 연구소 그만두고 나서 잠시 이제 실직자로 있으니까 노동대학장 맡는 게 어떠냐. 여러 분들이.

▶정관용> 잠깐만요. 한울노동문제연구소 그만두셨나요?

▷하종강> 예.

▶정관용> 언제요?

▷하종강> 연구소가 너무 규모가 커져서요, 이제 연구소 시스템을 운영하기는 좀 어려워졌고, 그리고 변호사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이게 규모가 굉장히 큰 로펌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연구소 일하는 사람들은 계속 다 그냥 일을 하고 있고, 저만 로펌 체제에서 일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그래서 저만 이제 그만둔 거지요.

▶정관용> 언제요?

▷하종강> 그게 이제 올 3월입니다.

▶정관용> 그렇군요,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종강> 그때에도 언론에서 오히려 제가 노동대학장 취임한 것보다 연구소 문 닫았다, 이게 오히려 더 많이 언론에 보도가 됐었는데, 모르셨네요.

▶정관용>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종강> 그래서 제가 연구소 문 닫은 게 뉴스거리가 되냐, 그랬더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정관용> 저는 계속 활동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 활동은 계속 되지만 연구소 이름이 이제 다른 것으로 바뀌면서?

▷하종강> 예, 그리고 이제 우리가 문을 닫을 때 23년 동안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 너무 뿌듯했기 때문에 구성원들 사이에 섭섭하거나 이런 건 사실 없었습니다. 

▶정관용> 예, 그리고 나서는 정말 그냥 강연 다니시고 이런 활동만 주로 해오셨군요, 3월 이후로는?

▷하종강> 예.

▶정관용> 그런데요. 여러분께서 그렇게 요청을 했는데 왜 싫다고 고사를 하셨어요?

▷하종강> 그런데 이제 크게는 두 가지인데요, 제가 생각해도 그렇고, 또 주변에서도 하종강의 정체성이 대학은 아니다, 이런 의견이 좀 있었고요. 그동안 제가 이제 말하자면 풀뿌리 활동이라고 부르는.

▶정관용> 현장 중심.

▷하종강> 예,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는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대학은 또 상아탑 이런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대학에 가 있을 때가 아니다, 이런 의견이 있었고, 그 다음에 마침 또 그 무렵에 성공회대학교 내에 비정규직 조교들이, 이제 비정규직 조교들의 투쟁이라고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또 그 분들을 만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대학에서 이런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비정규직 조교들을 더 이상 고용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는데, 거기 제가 새로운 직원으로 채용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게 문제가 안 될지 모르지만 나 같이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게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제가 그 결정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한 거지요.

▶정관용> 그럼 이제 해결됐나요?

▷하종강> 예, 해결됐으니까 이제 오시라고, 부총장님이 반 농담 삼아 아, 그거 해결되었으니까 오시지요, 그래서 갔습니다.

▶정관용> 그렇지만 아까 뭐 대학이라는 곳이 상아탑적이다, 이런 말씀 하셨지만, 이게 정식 전임교수가 되셔서 학부생들 학사지도하시고 그런 과정이 아니잖아요? 

▷하종강> 예, 그렇지요. 제가 대학 강의만 한다든가 이런 것은 아니어서 제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정관용> 그러니까요. 일종의 비정규직 학장이신 거네요.

▷하종강> 그렇지요.

▶정관용> 그럼 현재 신분은 전임교수 신분은 아니신 건가요?

▷하종강> 예, 아직 아니고요. 뭐 교수 발령을 이제 초빙교수 발령을 내주겠다, 이런 약속은 있었어요. 그런데 노동대학 사정이 좀 급박하게 돌아가서 업무 공백이 한 2달 정도 있었고요, 그러니까 이 순서가 좀 바뀌었는데, 보직 발령부터 먼저 좀 내겠다, 그리고 초빙교수 발령 이런 것은 조만간 내주겠다, 약속했으니까 봐야지요.

▶정관용> 그런데 어쨌든 초빙교수라 하더라도 이른바 전임은 아니신 거고.

▷하종강> 그렇지요.

▶정관용> 비정규직으로 분류가 되는?

▷하종강> 제가 전임교수 발령이라면 결정을 아마 못했을 겁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정체성이 확 바뀌는 것이라서요.

▶정관용> 그렇군요.

▷하종강> 그리고 아마 주변에 있는 아마 광범위한 토론을 거쳐야 결정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특히 이제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야,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데 우리 마음대로 그걸 결정할 수는 없다, 이런 이야기 농담처럼 하고 그랬지요.

▶정관용> 자, 그러니까 지금 이제 전국의 노동자들, 노동조합 활동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여러 가지 도움도 주시고, 또 그런 분들 가운데 조금 더 체계적인 공부를 원하시는 분들 성공회대 노동대학으로 모이신 분들, 또 체계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그런 책임을 맡으시고. 이게 결국 다 연결되는 일이지요.

▷하종강> 예, 그렇지요. 

▶정관용> 이런 일들을 시작하시게 된 게 30년 전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렇지요?

▷하종강> 예, 하다보니까 이렇게 된 거지요.

▶정관용> 어떻게 해서 내가 이렇게 살고 있게 됐을까요? 

▷하종강> 제가 이제 70년대 초반에 대학을 들어가서 80년대 초반에 마쳤거든요. 

▶정관용> 그렇게 오래 다니셨어요?

▷하종강> 그땐 또 대학을 오래 다녔습니다, 다. 들락날락하면서.

▶정관용> 어디를 들락날락하셨어요?

▷하종강> 아니, 그냥, 뭐 저는 남만큼 많이 고생하지는 않아서요. 그렇게 이제 감옥에 장기간 있거나 이런 사유 때문에 대학을 오래 다닌 건 아닌데요, 아무튼 74년에 들어가서 82년에 제가 졸업을 했습니다.

▶정관용> 학생운동하시고?

▷하종강> 예, 그리고 그때는 유신 거의 말기였기 때문에, 그러니까 유신헌법이 만들어진 그 다음해인가 제가 대학을 들어갔고.

▶정관용> 다다음 해네요, 74년이면.

▷하종강> 예, 그리고 대학 들어가던 바로 그해에.

▶정관용> 긴급조치 내려지기 시작하고.

▷하종강> 예, 민청학련 사건 터지고, 고등학교 같이 활동하던 선배들이 거기 많이 구속되고 이랬던 시대에 대학을 다녀서 학생운동을 한다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지요. 그리고 그 무렵에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학생운동 마친 사람은 그냥 노동운동을 하는 게 그냥 정상적인 코스였었고,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문화운동을 하거나 또는 뭐 농촌에 뜻이 있어서 농민운동하거나 이런 경우 외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노동현장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서 노동운동을 폼 나게 못해도 천만 노동자, 그때는 천만 노동자라고 그랬어요.

▶정관용> 그랬지요.

▷하종강> 천만 노동자의 머릿수 하나 보태는 거라도 하자, 뭐 이런 게 그냥 대부분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이제 바로 80년 그 무렵에 동일방직 노동자들하고 같이 만나게 됐어요. 그런데 동일방직에서 124명이 그때 해고됐는데, 70년대 말에. 절반 정도가 저하고 나이가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같은 젊은이들끼리여서 인간적으로 굉장히 친밀해진 거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노동문제가 제 생활의 중심에 오게 된 거지요.

▶정관용> 그런데 보통 대학에서 학생운동하고, 노동운동으로, 노동현장에 투신하고, 이른바 학출 출신으로. 소위 말하는. 그런 분들이 이제 노동현장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그런 분들이 또 위원장도 되시고, 그러다가 그런 분들이 민주노총 위원장도 하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도 하고, 뭐 이게 이런 분들이 많은데.

▷하종강> 그렇지요.

▶정관용> 왜 직접 그런 노동현장에 가서, 아까부터 현장을 강조하시는 분인데, 직접 내가 노동자가 되어서 노동조합도 조직하고 위원장도 하고, 왜 그런 경로는 택하지 않으셨지요?

▷하종강> 아, 그걸 이제 처음에는 시도했었는데요, 흔히 말하는 조직사업이라는 것에 우리가 그때 복무한다, 이런 표현을 하잖아요. 그게 상당히 힘들었어요, 저에게는. 그래서.

▶정관용> 왜요? 왜 그렇게 힘드셨을까요?

▷하종강> 아, 그거는 좀 내밀한 이야기를 하기는 상당히 어려운데요, 그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쉽게 표현하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기도 하고 이런 갈등들이 상당히 견디기 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야,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이제 교육, 상담 이런 것을 제 영역으로 선택했는데, 교육은 제가 처음에는 감히 하지 못했고, 상담을 이제 선택했더니 주변에서는 너무 편한 선택을 했다, 이런 비난이 좀 있었고요. 그런 이야기할 때 제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했냐 하면 내가 노동상담을 선택했다는 것은 운동권 내에서 출세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운동권 내에서라도 꼭 성공하겠다, 이런 집념을 버렸다는 뜻이다, 주변에서 당신들처럼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물 한잔 떠다드리는 일을 내 영역으로 선택하겠소, 뭐 이렇게 이제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이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고 보지 않았다, 뭐 이런 비판도 많이 있었고요. 그런데 어찌 보면 그런 선택이 저를 견딜 수 있게 한 거고요.

▶정관용> 견딜 수 있었다? 아까 조직사업을 하다보면 어제의 동지가 또 적이 되기도 하고.

▷하종강> 그게 꼭 나쁜 건 아니고요. 

▶정관용> 특히 80년대 초반 같은 때는 또 무슨 노선투쟁, 이념투쟁 이런 게 워낙 많았었단 말이에요. 그런 데에 좀 환멸을 느끼셨던 건가요?

▷하종강> 환멸이라고까지 제가 표현하기는 싫고요. 물론 저도 이제 후배를 조직에서 제명해보기도 하고, 저는 제명까지는 안 당했어도 하종강은 이 조직 교육사업 일체 손을 뗀다, 이런 결정을 받아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게 저는 이제 힘들더라고요, 견디기가. 그래서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인데, 참, 너무 어렵겠다, 그래서 그냥 그런 영역을 선택했지요.

▶정관용> 곁에서 돕겠다?

▷하종강> 예, 물론 그게 그 조직의 중심에서 하는 사업보다 강도가 좀 약하기도 했지만, 그 노동상담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하는 활동이어서.

▶정관용> 그럼요.

▷하종강> 거기에서 배우는 게 또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내가 이 두꺼운 서류뭉치를 붙들고 한 며칠 밤을 새면 저 노동자가 따뜻한 밥 한 그릇 먹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게 노동상담에는 있어요.

▶정관용> 그렇지요.

▷하종강> 그래서 그런 일이 계속 끊임없이 저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오히려 좀 어려운 시기를 남보다 쉽게 견딜 수 있는 요인이었다고 봅니다.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력 사항을 보면 1994년에 전태일 문학상을 타셨어요?

▷하종강> 예.

▶정관용> 문학작품도 쓰셨나요?

▷하종강> 제가 이제 어릴 때부터 이제 글 쓰는 일은 계속 했었고요. 물론 문학소년이나 문학소녀 이런 꿈을 안 가져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정관용> 예, 그때 그랬지요.

▷하종강> 어릴 때 백일장에 나가서 상도 한번 타보고, 또 중고등학교 시절에 문예반 활동 열심히 하고 그랬는데, 그 문예반 활동했던 선배들이 대학에 가서 대부분 학생운동을 했거든요. 그것이 또 저에게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꿈을 이제 포기하기는 싫었어요, 제가. 그리고 노동자들을 만나다보면 이 이야기는 정말 누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이런 일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정관용> 그렇지요.

▷하종강> 예를 들면 제가 봐도 신기할 정도로 열심히 싸우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제가 물어봤어요. 항상 그렇게 싸우는 이유가 뭡니까. 그랬더니 하는 말이 모르겠어요, 그냥 싸움이 벌어지면요, 내가 앞에 가 있더라고요. 이런, 그런 말을 하기까지 그 사람이 겪었던 삶의 많은 경험들이 있거든요.

▶정관용> 그래서 그런 것들을 글을 쭉 쓰시고?

▷하종강> 그런 것들을 틈틈이 기록했다가.

▶정관용> 책도 많이 펴내고 그러셨는데, 그것 때문에 전태일 문학상을 타신 건가요?

▷하종강>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을 때는, 그렇게 적었던, 말하자면 일기처럼 정리한 글들을 묶어서 냈던 책이었고요. 그래서.

▶정관용> 알겠습니다.

▷하종강> 언젠가 내가 이제 시간이 많아지면 그런 것들로 작품을 써보자, 이런 꿈을 버리지 않고는 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관용> 문학작품으로?

▷하종강> 예.

▶정관용> 하실 일이 많습니다. 이제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으로서의 일도 책임지셔야 되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해오시던 일도 계속 하셔야 되고. 오늘 하나 추가됐습니다. 이제 문학작품도 쓰셔야 됩니다.

▷하종강> 아니, 그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이야기인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관용> 아니, 기회를 가지셔야 합니다. 뭐 강연 다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그런 오랜 경험과 생생한 현장에서의 느낌으로 써낸 훌륭한 문학작품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또 큰 영감을 줄 수 있을지, 삶의 지표가 될 수 있을지, 이것도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하종강> 그런데 이제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항상 주변에 있는 편이어서요.

▶정관용> 제 말 들으세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도 중요합니다.

▷하종강> 아, 소설가들이 들으면 좀 그렇겠네요.

▶정관용> 한번 해보세요. 워낙 글재주가 또 훌륭하시니까요.

▷하종강> 아이고, 별 말씀을요.

▶정관용> 다시 한 번 노동대학장 취임 축하드리고요.

▷하종강> 노동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못했네요, 와서.

▶정관용> 앞으로 좋은 활동 또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종강> 예, 고맙습니다.

Posted by orangu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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