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1년 11월 3일 (목)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코미디언 김미화


[집중인터뷰] "정관용, 김미화를 만나다!" ②

▶정관용> 시사자키 3부 시작합니다. 2부에 이어서 여러분 좋아하시는 김미화 씨. 다음 주부터는 이제 매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여러분과 만나시게 될 김미화 씨와의 긴 대화,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김미화> 아, 죄송해요, 저는 이 프로그램이 정통으로 아주 딱딱한 시사프로그램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까 친절하고 재미있는 시사프로그램, 이렇게 나오는데, 정말 친절하시네요.


▶정관용> (웃음) 뭐 저희는 그냥 다 합니다, 이것저것. 

▷김미화> 예, 그러시네요.

▶정관용> 친절하고 재미있게도 하고요, 뜨거운 토론도 하고요.

▷김미화> 그러니까요. 날카롭게 하시잖아요.

▶정관용> 또 사람 냄새나는 인터뷰, 이런 것도 하고요.

▷김미화> 사람 냄새도 나나요?

▶정관용> 오늘은 그거 하는 날입니다, 사람 냄새나는 인터뷰.

▷김미화> 예.

▶정관용> 지금 아마 청취자분들이 굉장히 물씬물씬 냄새를 느끼고 계실 거예요.

▷김미화> 고맙습니다.

▶정관용> 아까 우리 소셜테이너, 폴리테이너 이야기하다가 이제 잠깐.

▷김미화> 예, 저는 사실 영어가 너무 어렵고 그래가지고, 그 구분이 뭐 어떻게 되는지도 사실 몰랐었어요. 그런데 하도 폴리테이너, 소셜테이너 이렇게 신문에도 많이 나고, 늘 또 그런 이야기가 있고 그래가지고 도대체 이게 구분이 뭔가를 찾아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사회적인 연예인, 또 정치적인 연예인. 

그런데 기자들조차도 이것이 사회적인지 정치적인지 몰라요. 그래서 전화하면 아, 뭐 정치적이시잖아요, 그래서 소셜테이너라는 이야기를 들으시잖아요. 이렇게 또 전화하시는 기자들도 있어요. 그래서 그게 모호한데, 사실은, 구분이. 저 같은 경우는 제가 NGO 단체들하고 인연을 맺어가지고 활동한 게 벌써 이십 수년이 넘는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관용> 어떤 것들이지요? 예를 들면.

▷김미화> 유니세프도 있고요, 여성재단, 여성단체연합, 또 녹색연합. 뭐 이런. 그러니까 십 수년, 또는 이십 수년 이렇게 관계 맺어온 단체들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런 어떤 사회활동하시는, 운동하시는 분들과 오랜 세월 인연을 맺어왔는데, 어느 순간에 어떤 단체는 나쁜 단체이고, 어떤 단체는 좋은 단체, 이렇게.

▶정관용> 편 가르기가 됐네요.

▷김미화> 이렇게 편 가르기가 딱 되면서 왜 그 단체를 도왔냐, 이렇게 물으시는 거예요, 정치하시는 분들이.

▶정관용> 그렇지요.

▷김미화> 그러면 저 같은 경우는 대중연예인이고, 대중연예인들이 할 일은 우리 사회가 밝은 길로 나가는데 뭔가 알릴 일이 있다, 그러면 사실은 나서야 되는 게 올바른 건데, 자꾸 이제 규정지어서 이건 왜 했어, 이 단체는 뭐 그렇잖아, 이렇게 이야기해버리면.

▶정관용> 그렇지요.

▷김미화> 그러면 뭐 이십 수년, 십 수년 인연 맺어왔던 단체들하고 인연을, 어떤 정권에 따라서 막 끊어야 되는 건지 이제 혼란이 오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어떤 단체든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단체가 있다면, 그 단체가 뭐 1년 정도 돕고 없어져요. 그래도 안 도우려고 마음 먹고 있는 사람보다는 낫다.

▶정관용> 그렇지요.

▷김미화>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정관용> 조금이라도 하는 게 낫다.

▷김미화> 예, 그 도움을 받으시는 거잖아요, 어려운 분들이.

▶정관용> 그렇지요.

▷김미화> 그래서 대중연예인들이 많이 좀 나섰으면 좋겠는데, 괜히 뭐 어떤 일에 나섰다. 예를 들면은 제가 효순이, 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목숨을 잃었단 말이에요. 오래 전에. 그때 제가 뉴스를 이렇게 보다가, 어, 진짜 저도 딸이 둘이 있는데, 아, 우리 딸 같은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잃었는데, 왜 SOFA 규정이라는 게 이게 어떻게 되어 있기에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정관용> 제대로 못하느냐.

▷김미화> 예, 제대로 뭐 벌을 줄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가 용서를 해줄 수도 있는 문제잖아요. 그 엄마, 아빠는 용서하실 수도 있는 건데, 엄마, 아빠가 아무 것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 이제 답답해서 그 엄마, 아빠를 만났고 그 다음에 그 어린 영혼들을 향해서 국화꽃 한 송이를 놓아주었고. 뭐 이런 것을 대중연예인들과 함께 했단 말이에요.

▶정관용> 그렇지요.

▷김미화> 그런데 그것이 어느 순간에.

▶정관용> 정치적으로?

▷김미화> 예, 정책에 반하는 것이다, 라는 색깔로 막 비춰지게 되면서. 또는 대통령들의 행사. 우리는 대중연예인이기 때문에 사실은 공식적인 행사도 있지만 비공식 행사에 청와대에 들어가서 행사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장애인 여러분들이 모여서 청와대에 초청을 받았다, 또는 어린이들이 초청받았다. 

▶정관용> 항상 있지요. 어린이날, 장애인의 날, 그럴 때도 있고.

▷김미화> 예, 가서 제가 진행을 봐준, 진행을 한 게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다른 대통령들을 진행했을 때는 아무런, 제가 뭐 무슨 칭찬을 받거나 비판에 휩싸이거나 이런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유독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딱 1년 남겨놓고 제가 인터넷 기자협회에서 사회를 봐달라고 해가지고, 기자협회의 요청으로 제가 가서 기자들과 간담회의 사회를 본 거예요.

▶정관용> 청와대에서?

▷김미화> 예, 그런데 그게 좌파다. 

▶정관용> 그럼 그 전에 김대중 정부 때 뭐.

▷김미화> 예, 김영삼 정부 때, 노태우 정부 때.

▶정관용> 노태우 정부 때도?

▷김미화> 예, 그리고 그 전.

▶정관용> 전두환 정부 때도?

▷김미화> 예, 왜냐하면 제가 86년도에 쓰리랑 부부가 떴거든요. 소위 말하는.

▶정관용> 예, 맞아요.

▷김미화> 인기를 막 많이 얻었거든요. 

▶정관용> 음매 기 살어, 그거 말이지요.

▷김미화> 예, 그래서 83년도부터 제가 방송을 시작했고요. 그래서 그 오랜 세월을 그냥 저는 대중연예인으로서 꾸준하게, 아, 이게 내가 할 일이다, 생각하면 가서 한 거예요.

▶정관용> 모든 정부 청와대를 다 들어가 보셨고?

▷김미화> 예.

▶정관용> 또 그 기간 동안 줄곧 몇몇 사회단체들과 활동을 해오셨는데.

▷김미화> 예, 그런데 갑자기.

▶정관용> 갑자기 요즘 문제가 되는 거네요, 몇 년 전부터.

▷김미화> 예, 요즘에 이상하게 그런 행동들이 다 잘못되었다, 라고 재단을 해버리니까, 저 스스로도 아, 이게 진짜 내가 살아온 게 잘못 살아온 건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잘못 살아오지는 않았더라고요, 제가. 

▶정관용> 다시 돌이켜보면, 그러니까 소셜테이너, 폴리테이너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대중연예인은 사회를 밝은 길로 이끌기 위해서 사회적인 문제들에 서로 관심사를 나누고 동참하고 서로 또 항상 도와줄 수 있도록 하고.

▷김미화> 예, 관심을 더 많이 갖게 하는 역할.

▶정관용> 그게 소셜테이너다, 그런데 그런 활동을 정파적으로 보는 것. 그게 문제가 되는군요.

▷김미화> 그렇지요.

▶정관용> 그런데 과거에 이제 연예인들 중에는 그야말로 폴리테이너, 어떤 특정 정파를 위해서 활동하시고 심지어는 직접 출마해서 국회의원도 하고. 이런 분들도 계셨잖아요.

▷김미화> 예, 아니, 정말 국회의원이 되고 싶거나, 또는 뭐 저는 정치적인 표현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갖지 않아요. 제 후배들도, 또는 뭐 선배님들도 내가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또는 민주당을 지지한다, 이런 이야기 할 수 있어야 되는 거거든요.

▶정관용> 그럼요.

▷김미화> 그런데 지금 다 꽁꽁 숨기고 이야기를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저 사람이 과연 어디를 도대체 선호하는 건지, 지지하는 건지, 그거 왜 말을 못해야 되는 건지. 

그렇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절대 아닌 거지요. 굳이 뭐 우리가 선진국이 좋다, 좋다, 이야기하는 것은 선진국이 뭐 물건이 좋고 그래서뿐만 아니고 문화적으로 성숙해있다, 라는 점에서, 그 사람들이, 아, 제가 좋아하는 오프라 윈프리를 보십시오. 대통령 누구 나오면 지지하잖아요.

▶정관용> 예, 공개적으로.

▷김미화> 공개적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옳은 사람이다, 그러면 지지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뭐 방송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이렇게 하루아침에 그만둬라, 라는 소리를 듣거나 그런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정관용> 그러니까 우리 사회는 이제 그런 면에서 괜히 좀 쓸모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 같아요.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요.

▷김미화> 글쎄요.

▶정관용> 불필요한 것에.

▷김미화> 우리 사회는 저는 굉장히 건전하고 사람들 생각이 올바르다, 이런 확신이 저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만나보는 분들이 전부 그냥 우리 사회에 소소하게 사는, 그런 이야기 또 나눌 수 있는 그런 분들이니까요. 그런데 이제 몇몇.

▶정관용> 분들이?

▷김미화> 권력을 가지신 분들이 저는 문제다, 그런 생각을 해요.

▶정관용> 글쎄요, 그러니까 그런 분들이 시대상황에 맞지 않게 불필요한 논란을 일부러 만들면서 우리 사회의 에너지를 좀 낭비시키고 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김미화> 예전에 제가 시사프로그램 안 그만뒀을 때, 그때 홍준표 대표님.

▶정관용> 지금 대표지요.

▷김미화> 예, 연결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제 막 프로그램에서 내려가라, 올라가라, 막 이런 일로 시끄러웠을 때에요. 그래서 그분이 딱 연결되자마자 저한테 아, 진짜 김미화 씨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러면서 힘내십시오, 이런 이야기 하셨거든요. 저는 해결해주실 줄 알았어요. (웃음) 그런데 아무 해결이 없더라고요.

▶정관용> 그런데 또 사실 원칙적으로 그런 분이 해결해서도 안 되는 거지요.

▷김미화> (웃음) 안 되지만, 그분의 말씀은 들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정관용> 그래요. 소셜테이너라고 좀 특별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문제다?

▷김미화> 예, 그냥 대중연예인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정관용> 그래요.

▷김미화> 그래서 그 사람들은, 이런 거지요, 대중연예인들이 그냥 연기자는 연기하고, 가수는 노래하고, 코미디언은 코미디해, 그러면 아무 시빗거리가 없어요. 

그러나 알려진 사람이잖아요. 알려진 사람으로서, 제가 이렇게 많이 사랑을 받았는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정말 많은 분들이 아, 내가 이런, 그런 분들에게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될까, 정도의 과분한 사랑인데, 그것을 좀 사회를 밝게 하는데 돌려주고, 1%의 재능 나눔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요.

▶정관용> 그렇지요.

▷김미화> 그것이 길이 막히면 이거는 건전한 사회가 아니지요.

▶정관용>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듯이 대중연예인도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적 활동하는 것, 너무 당연한, 그냥 상식인데요.

▷김미화> 그렇지요. 그냥, 오히려 그런 사회적 활동을 안 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안 하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정관용> 맞아요. 뭐 좀 게으르고 귀찮아서 안할 수도 있지요.

▷김미화> 아, 그렇지요.

▶정관용>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는 조금 지나치게 그런 활동 조금만 하면 말씀하신 것처럼 정치적인 색깔로 보고, 또 게다가 정파적으로 편을 나누려고 하고, 심지어는 불이익까지 주고 말이지요. 갑자기 화 날려고 그러네요.

▷김미화> (웃음)

▶정관용> 자, 그런데 83년부터 아까 개그우먼, 코미디언 활동을 시작하셨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시게 됐어요? 원래 그런 끼가 다 있었습니까?

▷김미화> 예, 어릴 때부터 저는 꿈이 코미디언이었고요.

▶정관용> 우와, 그래요?

▷김미화> 한 번도 그 꿈이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야, 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정관용> 어떻게 어릴 적에 그런 꿈을 꾸셨어요? 누굴 보고?

▷김미화> 어릴 때 저는 배삼룡 선생님하고 서영춘 선생님, 또는 구봉서 선생님, 송해 선생님, 이런 분들이 저의 교과서였습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가방을 내팽개치고,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어요, 저희 집이 가난해가지고. 그래서 옆 집 쌀가게에 텔레비전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막 김일 선수 레슬링하는 거 이런 거 동네 사람들이.

▶정관용> 다 모여서 보고.

▷김미화> 예, 바닥에 멍석이나 이런 거 깔아놓고 신문지 같은 거 깔고 앉아가지고 보고 이러던 때였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 그런 꿈을, 그분들을 통해서 가지고 있다가, 점점 이제 나이가 들면서 개그맨들이 활동하기 시작했고요. 그래서 제가 이성미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등학교 때 막 엽서도 보내봤고요. 개그맨들, 코미디언을 동경하니까. 그리고 졸업하기 전에 몇 번 개그맨 시험을 봤었어요. 그런데 이제 교복을 벗고 와라, 그래가지고 좀 쓰라린 경험을 한 적이 있고. 졸업과 동시에 제가 시험을 봐가지고 들어간 겁니다.

▶정관용> 공채로? 

▷김미화> 원래 MBC로 들어갔었어요. 그래서 MBC는 라디오에서 뽑았었는데, 제가 한 6개월 정도를 MBC 라디오에서 있었거든요. 이제 수업 받고. 그때는 이제 라디오에서 무슨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면 나갈 준비를 하고, 계속 아이디어 짜고 그랬는데, 아무 데에서도 안 불러주고요, 장수만세인가, 뭐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기에 이제 어르신들 즐겁게 해주는 아주 짧은 꼭지의 꽁트 한번 해보고, 9천원인가, 하여튼 6천원인가, 기억은 안 납니다만, 하여튼 1만원은 안 되는 돈을 제가 받았던.

▶정관용> 6개월 동안?

▷김미화> 예, 그게 이제 제가 MBC에서 벌어들인 수입의 전부였습니다.

▶정관용> 6개월 동안에 유일하게?

▷김미화> 예.

▶정관용> 그러니까 뽑긴 뽑았는데 일을 안 줬던 거로군요.

▷김미화> 예, 활용이 없어서.

▶정관용> 그래서 이제 옮기셨다?

▷김미화> 그래서 제가 옮겼습니다.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첫 졸업하자마자 시험 봐서 붙을 정도면 일단 준비된.

▷김미화> 예, 제가 실력이 있었어요. 그래서 동네에서, 오죽하면은, 저는 이제, 쌍문동, 혹시 둘리가 태어난 개천을 아세요?

▶정관용> 모르겠는데요.

▷김미화> 천지천이라고요, 둘리 만화가가 그 천지천에서 둘리가 태어났다, 그 동네 사셨거든요, 그분이.

▶정관용> 아, 그랬어요?

▷김미화> 자주 만났습니다, 저도. 김수정 선생님. 그래서 거기 천지천에다가 저희가 무허가 주택을 짓고 살았던, 그런 많은 동네 분들, 예전에는 그렇게 발전이 없었으니까 전부 동네가 공장이었고 그랬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이제 장사를 갔다 오시면 머리에 광주리 이고 생선 파시는 분도 계셨고, 과일 파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러면 마당이 되게 넓었는데, 거기에 평상 가져다놓고 모두 모여서 미화, 노래 한번 해봐라, 그러면 제가 전파,. 예전에는 이렇게 길 다니면 전파사에서 막 음악 소리가 굉장히 시끄럽게 길에서 많이 나왔었던.

▶정관용> 맞아요.

▷김미화>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조용해졌지만요. 그 전파사 아저씨가 저를 위해서 마이크를 만들어줬어요. 그때 한 8살, 9살 그럴 때입니다.

▶정관용> 아, 그때부터? 동네 꼬마 스타셨구나.

▷김미화> 예, 그래서 이제 마을 분들을 위해서 제가 노래 막, 이미자 선생님 흉내 내고, 김추자 선생님 흉내 내고 그러면 동네 분들이 팔다 남은 자두, 복숭아, 또는 몇 원 이렇게 줘요. 그러면 그걸 가지고 제가 껌도 사먹고, 사탕도 사먹고.

▶정관용> 그때부터 수입이 있으셨군요.

▷김미화> 예, 그때부터 수입이 짭짤했던.

▶정관용> 그리고 이제 학교에서는 아마 또 오락부장 이런 거 도맡으셨을 테고.

▷김미화> 오락부장은 제가 도맡았고요, 소풍에서 제가 빠지면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저희 담임선생님이 이제 그때 첫 부임해가지고 처녀 선생님이셨어요. 노병화 선생님이라고, 그분이 오셨는데, 제가 되게 웃기니까 소풍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셨나봐요. 

제가 그 선생님 집을 찾아갔습니다. 왜 찾아갔느냐, 김밥을 못 싸가지고 선생님 저희는 내일 소풍가는데 김밥을 못 싸서 소풍에 못 갑니다. 그때 용기가 있었나봐요, 제가. 선생님이 야, 내가 김밥, 네 것 하나 더 싸줄게, 그래가지고 소풍 가야 돼, 너는 안 오면 안 돼, 오락부장이 안 오면 되냐, 그래가지고 선생님한테 빌붙어가지고.

▶정관용> 그게 뭐 숨겨진 끼를 발견한 것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동경하고 갈고 닦았던 실력, 그리고 몸 안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그런 재능, 그걸 평생 지금 쫙 가고 있으니까, 정말 부러운 인생이네요.

▷김미화> 예, 저는 정말 자신 있었어요. 아, 내가 코미디계에 나가면 정말 뒤엎는다. 이렇게 생각을 햇었거든요.

▶정관용> 또 뒤엎으셨지요.

▷김미화> 그런데 안 풀리더라고요, 처음에는.

▶정관용> 아, 실제 뒤엎으셨지요, 결국은.

▷김미화> 아, 그게 사실은 뭐 금방 그렇게 된 것 같지만, 제가 83년부터 시작했으니까, 86년까지는 굉장히 긴 세월이잖아요.

▶정관용> 3년인데요 뭐. 

▷김미화> 뜨고 싶은 사람 입장에서는.

▶정관용> 그런가요?

▷김미화> 생각을 해보세요.

▶정관용> 요즘 한참 인기 끄는 개그맨들도 보면 실 몇 년씩 그런 기간들이 있더라고요.

▷김미화> 예, 그런데 그때는 참 답답했는데, 제가 지나고 보니까, 야, 이런 시간이 나에게는 황금 같은 시간이었구나. 그때 제가 선배님들 코너 할 때, 아무런 배역을 받지 못하니까 그 세트 앞에서 매일 매일을 아, 이성미 씨가 저렇게 연기하는데, 내가 만약에 나중에 저런 역할이 주어지면 나는 이렇게 연기할 거야.

▶정관용>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고.

▷김미화> 예, 선배님들 옷 치우라고 그러면 옷 치우고. 그 다음에 뭐 나가서 보라고 그러면 보고, 대본 챙겨드리고 그런 거 하면서.

▶정관용> 맞아요, 그런 기간 없이 바로 뜬 친구들은 어쩌면 또 금방 내려가더라고요.

▷김미화> 아니, 또 쭉 뜬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웃음)

▶정관용> 그래요? (웃음) 대표적인 게 누구입니까? 처음부터 떠서 쭉 가는?

▷김미화> 그러게요. 잘 기억은 안 납니다만, 어찌 되었건.

▶정관용> 아, 3년이 참 견디기 힘드셨구나. 지금도 막 가슴이 아플 정도로.

▷김미화> 예, 진짜로, 그때 진짜 답답했던 거지요. 왜냐하면 폭발적인 인기를 처음부터 얻었어야 되는데, 내가 이런 자신이 있는데, 왜 안 뜨는 거야. 이렇게 웃기는 얼굴인데.

▶정관용> 그러다 이제 시작이 그 음매, 기 살어, 음매, 기 죽어. 그걸로 이제 일약 국민 스타가.

▷김미화> 쓰리랑 부부로요. 

▶정관용> 되셨던 거고.

▷김미화> 예, 그때 길창덕 선생님 찾아가서 뵙고, 제가 선생님 만화 중에 순악질 여사라는 그 만화 캐릭터를 제가 텔레비전에서 쓰고 싶은데 그 일자 눈썹을 쓰게 해주십시오, 그래가지고.

▶정관용> 허락받아서?

▷김미화> 예, 선생님이 허락해주시고, 그 다음에 만화도 그려주셨어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단체 활동이나 이런 등등을 시작하시게 된 것은 대략 언제쯤부터였지요? 90년대?

▷김미화> 어, 그렇지요. 9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89년도, 88년도? 

아마도. 세월이 오래 흘렀으니까요. 그때 제가 처음에 사랑의 삼각끈이라는, 그런 그러니까 후원자와 독거노인과 혼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 이렇게 세 명을 연결해주는 그런 운동을 처음 시작했었는데요, 그게 소문이 나면서 이제 유니세프하고 인연을 맺게 됐고요, 그러면서 이제 여러 단체들.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런 활동을 왜 시작하셨어요, 라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은 안 하겠습니다. 그건 뭐 아까 다 설명하셨잖아요?

▷김미화> 그렇지요.

▶정관용> 세상 사는 사람으로 그냥 마땅히 하는 것 아니냐.

▷김미화> 예.

▶정관용> 특히 또 어린 시절 가난하게 사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 내가 이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고 돈도 벌고, 뭐 일부 좀 돌려드려야 되겠다, 그러면서 시작된 것 아니겠어요?

▷김미화> 예, 저는 그런 활동할 때 제가 즐겁지 않으면 절대로 안 가거든요. 가서 즐기는 거지요, 함께.

▶정관용> 그러니까요. 지금 이제 다음 주부터 새로운 프로그램 시작하시고, 또 대학원 공부도 하셔야 되고, 또 인터넷 신문도 만드셔야 되고, 할 일이 많습니다만, 혹시 그것 말고 또 숨겨놓은 꿈이 있으십니까?

▷김미화> 없습니다, 꿈이요. 예, 저의 생각은 이래요. 꿈을 갖기보다는 하루하루 내가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는가, 하루하루 나의 발자국을 제대로 잘 찍었는가.

▶정관용> 아니, 그럼 새롭게 좀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라든가.

▷김미화>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는 코미디라니까요. 아직도 도전정신을 이렇게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든 불러주면 달려갈.

▶정관용> 그러니까 지금 제가 쭉 소개해드린 그것 외에 아, 이런 영역도 내가 한번 해보고 싶다, 그건.

▷김미화> 예, 없어요.

▶정관용> 특별한 건 없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김미화> 예, 그러다 보면 주어지겠지요, 저에게.

▶정관용> 예, 그런데 제가 아까 대학을 늦게 공부하시고, 언론정보대학원을 하고, 동양철학 박사과정을 하신단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저분은 그냥 매일매일 열심히 살다보면 새로운 걸 도전하는 분이구나. 

▷김미화> 예, 맞습니다, 잘 보셨어요.

▶정관용> 그런데 그러면 지금 꼭 내가 아, 몇 년 후면 이걸 해야지,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몇 년 지나면 또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계실 것 같아요.

▷김미화> 예, 그럴 겁니다. 저는 정말 재미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거든요.

▶정관용> 재미있는 할머니?

▷김미화> 예, 그래서 이 사회에 재미있는 할머니가 재미있게 쓴 소리 하면 좋잖아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우리 나중에 재미있는 할머니, 재미있는 할아버지로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자구요. (웃음)

▷김미화> 예, 만나시자구요. (웃음)

▶정관용> 자, 여러분 좋아하시는 김미화 씨, 이제 다음 주 월요일부터 매일 2시부터 4시까지 매일 만나실 수가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애청해주시고, 또 참여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요, 저희 프로에도 자주 좀 나오시고요.

▷김미화> 예, 불러주십시오, 반가웠습니다.

▶정관용> 저도 그 프로에 한번.

▷김미화> 아요, 그럼요. 나와 주셔야지요.

▶정관용> 고맙습니다.

▷김미화> 예, 감사합니다.

▶정관용> 시사자키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내일 뵙지요. 안녕히 계세요.

Posted by orangutan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