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가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한 사건을 보며 예전에 들었던 한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나 같은 소심한 시민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지만 앞으로 밝혀질 사건의 전모는 또 얼마나 쇼킹하고 흥미진진할지. 어쨌든 드라마는 이제 시작이니 전개과정을 지켜보기로 하자.


이 소란의 와중에 또 한 가지 재미있는 해프닝이 있었으니 그건 조선닷컴의 사건 보도 기사였다. 이 기사는  ‘근거 없는 경찰의 발표로 여론이 오도되고 있다’는 최구식 의원실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하며 최구식 의원 측의 입장을 전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뭐 특별할 것이 전혀 없는 기사다. 그런데 처음 올라온 기사에는 의원실 관계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도 인용돼 있었다.


“3명의 진범이 민주당이나 민노당 혹은 북한의 사주 받아서 범행을 저지르고, 공씨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거짓말 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 않냐?” 


너무 익숙한 레토릭 아닌가? 그런데 더 웃기는 건 이 발언이 온라인에서 회자되자 곧 기사에서 빠졌다는 거다. 의원실 관계자가 한 발언이고 그쪽의 생각을 담고 있는 거라면 그대로 보도해야지 발언을 왜 빼버렸을까? 정말 북한의 소행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농협 전산망도 해킹한 북한이 아닌가. 정부와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언론들에 따르면 말이다. 그런데 그런 북한을 용의선상에서 빼버리다니. 사상이 불순해 진 건가, 아니면 북한 시나리오가 도무지 상식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건가?


내막이야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몇 십 년 동안 사회적 불만과 정치적 비판을 잠재우는데 만병통치약처럼 잘 통하던 ‘북한 약발’ 이 이제 효력이 확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북한’, ‘빨갱이’ 라는 호명이 두려움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는커녕 비웃음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이 된 거다. 국가안보를 좀 먹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이 작은 해프닝을 보며 문득 미국의 초대 국방장관 제임스 포러스틀과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가 떠올랐다. 냉전으로 반소, 반공 분위기가 광기로 치닫던 1949년 3월, 미국 플로리다 주의 한 주택에서 파자마 차림의 한 남자가 뛰쳐나와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적군이 상륙했다!” 소방차 사이렌 소리를 듣고 소련이 침공한 줄 알고 발광상태에 빠진 이 사람은 미국의 초대 국방장관 제임스 포러스틀 이었다. 그는 정신병동에서 치료를 받다 병원 건물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여기 내 손에 공산주의자 활동가들의 명단이 있습니다.” 또 한 사람,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를 휩쓴 냉전의 광풍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조셉 매카시는  ‘빨갱이 사냥’에 앞장서다 1954년 1월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미 육군장관 로버트 스티븐스를 빨갱이로 지목한 것이다. 로버트 스티븐스 육군장관이 사직원을 제출하면서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은 승승장구하는 듯 했지만 매카시와 스티븐스의 변호사가 텔레비전에 나와 논쟁을 펼치면서 매카시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스티븐스를 단죄하기 위한 심문회가 매카시의 무덤이 된 것이다. 상대를 잘 못 고른 탓도 있지만 근거 없는 ‘빨갱이 사냥’의 허상이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오롯이 드러난 것이 결정적이었다. 매카시의 외침은 더 이상 공포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5년 가까이 미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매카시였지만 사람들이 그를 비웃는 순간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것이다.


당신들은 공포의 대상인가, 비웃음의 대상인가?



Posted by orangu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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